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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종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우는 음악 ‘종묘제례악’
글 김호경 기자 1/1/2017 |   지면 발행 ( 2017년 1월호 - 전체 보기 )




태평양 바닷속을 헤엄치다 정어리 떼를 만난 적이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물고기가 가늠할 수 없는 규칙으로 움직였고 그 언저리에 있게 된 나는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숨을 아주 천천히 고를수록 물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고 어느 순간 숨을 쉬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사람도 물고기도 아닌 작은 점이 된 것 같았다.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홀가분하고 한없이 자유로운 느낌이었다

겨울의 종묘에 가다

‘이건 오직 우리나라만의 아름다움이다’라고 생각했던 장면이 있다. 눈이 내린 다음 날의 종묘였는데, 그 모습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사라지게 할 것만 같은 엄숙함과 숭고함을 가지고 있었다. 묵직하게, 길게 이어진 기와지붕에 눈이 쌓이고 그 아래 배흘림기둥이 가지런히 늘어섰다. 어두운 채로 닫혀 있던 처마 아래쪽은 그 깊이를 알 수 없었고, 영원할 것처럼 반복되는 둥근 열주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가르는 듯했다. 절제되고 단순한 모습이 오히려 단박에 마음을 끌어당겼다. 하얀 눈이 쌓인 위엄 있는 건축물을 바라보며, 눈이 시렸다.

북한산 끝자락에 자리한 종묘는 조선을 세우면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던 건축물 중 하나다. 유교 사상을 기반으로 세워진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조상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종묘는 태조 때 완공되었으나 태종에 이르러 제대로 모습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여러 왕에 걸쳐 증축과 보수가 이어졌는데, 임진왜란 때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된다. 그 후 선조 41년에 중건되기 시작해 다시 여러 왕을 거쳐 헌종에 이르러 현재의 모습을 갖춘다. 하나의 건축물이 400년이 훨씬 넘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하지만 지금 보는 그 모습이 처음부터 의도한 모습이 아니라는 그 점 때문에 종묘 정전이 더욱 신비로움을 가지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식 밖의 길고 단순한 반복이 주는 신성함은 아마도 그 모든 왕이 품었던 조상에 대한 성심에서 오는 것 아닐까.

겨울의 하늘은 더없이 파랗고, 공기는 뺨이 얼얼하도록 차가웠다. 하지만 종묘 정전의 모습은 한국적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정전의 남신문을 들어서면 먼저 동서 109m, 남북 69m의 장대한 하월대가 눈높이까지 차오르는데 참으로 숨 막히는 경험이다. 상상 이상으로 넓은 월대 위에는 정전과, 정전을 향하는 가운데를 가르는 길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 텅 빈 공간에 오직 고요함만 내려앉아 있다. 그리고 저 멀리 상월대가 한 번 더 정전을 받들고 있는데, 그 웅장함과 적막함은 몇 번을 마주해도 낯설고 두근거린다. 두근거린다는 말로는 표현을 다 할 수 없는 심장이 쿵쿵거리는 기분… 거대한 것을 마주했을 때의 위축과 존경이 섞인 바로 그런 기분이다.

정전의 아름다움은 반듯한 지붕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오묘하게 곡선을 이루는 여느 지붕들과는 달리 직선으로 평평하게 뻗어 무한을 향해 간다. 유한한 인간의 삶이 죽음을 통해 영원으로 이어지는 듯하고, 장식 없는 기둥과 처마가 단호함을 더한다.

정전 양끝에는 직각으로 뻗은 월랑이 다섯 칸씩 이어져 있는데, 이것은 중국 종묘 제도에 어긋났다고 한다. ‘태종실록’에 의하면 신하들의 반발에도 태종은, 중국의 제도에 구애받지 말고 조선의 여건에 맞게 제도를 변형시키라고 명했다고 한다. 종묘가 세계적으로 독창적인 건축물이 된 것은 이러한 강력한 의지가 투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종묘의 엄숙함은 정전뿐 아니라 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느낄 수 있다. 외대문을 지나면 얇고 넓적한 돌을 깐 길이 반듯하게 이어지는데, 길은 세 개로 나뉘어 있다. 가운데가 신(여기서 신은 조상의 혼령을 말한다)이 다니는 길, 그 오른쪽이 왕의 길, 왼쪽이 세자의 길이라고 한다. ‘가운데는 신이 다니는 길이니 통행을 자제해달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문장에서 풍기는 정중함에 더욱 어느 길도 밟지 않으려고 했다. 종묘는 어느 곳이나 엄숙함과 침묵이 내려앉아 있지만 그것만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성함이나 절대적 힘과 동시에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무슨 이유인지 궁금했다. 아마도 이곳에 제를 올리는 인간의 ‘겸손’ 때문 아닐까.

종묘 안에는 정전 외에도 영녕전, 향대청, 재궁, 공민왕 신당 등이 있고, 지당이라 불리는 못이 세 개 있다. 어느 곳이나 외대문 밖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평화로움과 지그시 내리누르는 듯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깊은 숨을 천천히 쉬니 역사에서 비롯된 시간의 냄새와 겨울의 냄새가 코에 섞여들었다.

삶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종묘제례악’


종묘제례악과 종묘제례는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다. 종묘제례를 보면 엄격한 형식과 예절에 맞춰 이루어지는데, 세종 때 만들어져 변형 없이 600년 가까이 이어지는 생명력이 위대한 유산으로 인정받은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제사에서 제례, 음악, 춤이 격식 있게 어우러지는 것은 현대에서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문화유산이다. 종묘에서 제례를 보고 듣고 있으면 전혀 다른 세계를 관통하는 초월적인 시간을 느낄 수 있다.

무형문화재 제1호인 종묘제례악은 세종 때 ‘살아서는 우리 음악을 듣다가 죽어서는 중국의 음악을 듣는 것이 맞지 않다’ 하여 만들어졌으며,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이는 노래와 기악, 춤을 통칭한다. 연주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듣거나 연주하면서 매우 신비로웠던 기억이 있다. 어딘지 어색하게 흘러가는 선율과 다른 음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행이 그렇다. 우선 악곡을 살펴보면 크게 보태평, 정대업 두 곡으로 나눌 수 있다. 보태평은 역대 왕들의 문덕을 찬미하는 내용으로 종묘제례에서 첫잔을 올리는 절차 등에서 사용되고, 정대업은 역대 왕들의 무공을 기리는 내용으로 종묘제례에서 둘째·셋째 잔을 올리는 절차 등에 사용된다.

음악과 함께 일무라는 춤을 추는데, 가장 큰 제사에서 8명씩 8줄로 늘어선 64명이 추는 춤은 매우 단순하면서 절도 있다. 일무 역시 문무와 무무로 나뉜다. 문무에서는 왼손에는 황적으로 만든 악기인 ‘약’, 오른손에는 꿩 털로 장식한 무구인 ‘적’을 들고, 무무에서는 앞의 4줄은 목검, 뒤의 4줄은 목창을 든다. 붉은 옷을 입고 추는 이 춤은 공간, 음악과 어우러져 매우 특별한 감동을 준다. 춤사위가 하늘과 땅과 사방으로 흩어지는데,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는 그 모습을 보다 보면 마음 저 구석에서 무언가가 일렁이며 일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렁이는 마음은 마치 언젠가 바다 안에서 느꼈던 중력이 사라진 세상에서 완전히 낯선 다른 힘에 몸을 맡긴 그 순간과 비슷하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과는 다른 공간과 시간이 그렇게 만드는 것 아닐까 싶다.

사실 이 격식 있는 음악에서 감동을 느끼거나 활력을 찾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가끔은 전혀 다른 세상을 마음속에 떠올려보고, 그것이 주는 낯섦이나 두려움에 맞닥뜨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것이 삶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세종 때의 명신 정인지는 음악에 대해 “음악은 성인의 성정(性情)을 기르며, 신과 사람을 화(和)하게 하며, 하늘과 땅을 자연스럽게 하며, 음양을 조화시키는 방법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떠올리며, 나의 음악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죽음과 삶에 대해

죽음은 가벼워서 오히려 선택할 수 없고, 삶은 무거워서 쉽게 내려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질풍노도의 시기, 나는 사는 것이 과연 죽는 것보다 나은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나의 삶도 그렇고 타인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삶과 죽음은 언제든 선택할 수 있는 것인데, 산 자가 늘 사는 것을 선택하기 때문에 삶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죽음을 선택하지 못하는 건, 죽음 다음에 놓인 것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삶 쪽으로 한 발을 더 내디딜 힘이 있었고, 그걸 멈출만한 내외부적인 엄청나고 결정적인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걸어올 수 있던 것이리라. 그리고 지금, 그것에 대해 깊이 감사한다.

종묘와 종묘제례악을 이야기하면서 다시 한 번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많은 순간이 위태로웠고, 한편으로는 간절했다. 누구에게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조상에게 감사하며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정어리 떼를 만났던 바다는 온화했다. 물이 밀려들 때 급작스럽게 차가워지기도 했고, 어떤 조류는 매우 부드럽고 따뜻했다. 바다는 수많은 결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그건 우리가 사는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속에는 절벽도 있고, 웅덩이도 있었다. 하지만 떨어지거나 빠지지는 않았다. 그곳은 땅과는 전혀 다른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수면 아래서 바라보는 달은 전혀 다른 모양이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아마도 물고기가 달이라고 믿는 것은 우리가 아는 달과는 다른 모양일 것이다. 그 다름과 낯섦을 깨닫는 순간 나의 세계는 또 다른 길로 이어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우리는 다른 세계로 통하는 길에 들어서는 것 아닐까.

사진 종묘관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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