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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이상 엔더스
음악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
글 김선영 기자 6/1/2013 |   지면 발행 ( 2013년 6월호 - 전체 보기 )




세상은 마치 캄캄한 터널 같아서 자칫 넘어지기 십상이다. 어두움에는 빛이 필요하다. 혹 지금 당장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괜찮다. 터널 끝에 찬란한 빛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말이다. 어둠 사이를 가로지르는 한줄기 빛을 본 사람은, 그 끝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 빛. 이상 엔더스는 그 빛을 음악이라 불렀다.

이상 엔더스와의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시계는 두 시간이 넘은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긴 터널을 거의 빠져나온 기분이 들었다. 좀더 선명한 빛을 따라왔다는 느낌도 함께였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이상 엔더스를 어떤 단어들의 조합으로 설명하려고 했던 것일까.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한국인 어머니와 오르가니스트이자 피아니스트인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첼리스트.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최연소 첼로 수석. 크리스토프 에셴바흐ㆍ이고르 레비트ㆍ정명훈과 실내악을 함께 한 연주자.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그는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했고 명성을 얻었으며, 일찍이 성공한 연주자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와의 오랜 대화 끝에 이런 단어 조합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저 중요한 것은 그가 음악 안에서, 음악이 그의 안에서 어떤 의미이자 존재로서 살아 숨쉬고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지난해 가을 통영에서 열린 윤이상국제콩쿠르 초청 연주와 대전예술문화의전당에서 가진 첫 독주회 이후, 반년 만의 한국 방문이다.
새로운 변화로 인해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한국에 왔다. 개인적으로 해야 하고, 또 하고 싶은 일들도 있었다. 매일 몇 시간씩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여섯 살까지는 집에서 한국어를 썼지만, 그 이후로는 독일어만 써서 한국어의 대부분을 잊어버렸다. 무엇이든지 스무 살 이전에 배우는 것이 쉽지, 그 이후로는 어렵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유럽에서 선보인 데뷔반이 최근 국내에서도 정식 발매됐다. 슈만과 윤이상의 첼로 작품들을 커플링한 레퍼토리가 상당히 이색적이다.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레퍼토리다. 음반 부클릿 첫 장에 적힌 ‘왜 개인적인 걸까(Why So Personal?)’라는 물음이 그 중심에 있다. 나를 움직이는 음악적인 정서ㆍ정체성ㆍ언어를 윤이상 안에서 발견했다. 그와 나는 한국과 독일 양 편의 정체성을 동시에 갖고 있지만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나는 윤이상의 음악과 글을 좋아하지만, 그의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가 음악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슈만과는 어떤 사적인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윤이상이 나의 정체성, 인생의 공식과 맞닿아 있다면 슈만은 지금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슈만은 드레스덴에서 살았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여러 기악곡과 성악곡을 작곡했고, 또 초연했다. 드레스덴은 내가 일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동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마 우리는 좋은 동료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슈만은 나와 같은 포지션에서 클라라 슈만과 함께 공연했다. 이미 200년 전의 일이지만 나는 그 역사가 지금 내 주변에서 일어난 것 같은 환상에 빠질 때도 있다. 그렇기에 이것은 개인적이면서 매우 역사적이다.
‘노래’라는 주제가 두 작곡가 사이를 관통하고 있다.
윤이상과 슈만에게 받은 영향 중 하나는 ‘노래하듯 연주하는 것’이다. 레퍼토리도 그 연장선에 있다. 슈만 ‘아다지오 알레그로’는 본래 오리지널 프렌치 호른을 위한 곡이다. 호른으로 이 곡을 연주하려면 숨을 깊이 들이쉬어야 하는데, 이것은 노래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윤이상 ‘공간 I’에서 첼로는 판소리처럼 노래하고 피아노는 장단을 맞춘다. 윤이상의 ‘노래’는 제목 그 자체로, 노래하는 듯한 느낌의 곡이다. 슈만의 ‘리더크라이스’에 있는 ‘미르테와 함께 장미꽃을’은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직접 편곡해 녹음했다. 세계 최초 녹음이다. 환상 소곡집은 클라리넷을 위한 곡인데, 노래할 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처럼 연주하도록 되어 있다. 피아노 4중주 Op.47 중 안단테 칸타빌레는 그 의미대로 노래하듯 연주하고 있고, 처음과 마지막이 호흡으로 맺어진다. 모두 노래하는 듯한 느낌의 곡들이고, 슈만과 윤이상의 음악이 교차되지만 아마 그 흐름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그 모든 흐름들, 음악이 시작되는 긴장과 이완의 순간, 숨이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의 미묘한 차이 때문에 모든 곡들을 직접 에디팅했다.
자신의 음악적인 언어가 한국과 독일 가운데 어느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나.
어린 시절 동생과 나는 엄마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정신과 문화를 체득할 수 있었다.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인 이슈에 관해서는 독일에 가깝지만, 나의 개인적인 성향, 예를 들어 혼자 있거나 여자친구와 둘이 있을 때는 내면에서 한국적인 것 - 드라마틱하면서도 부끄러움을 타는 - 이 나온다. 음악적인 면도 마찬가지다. 연주할 때 어떻게 표현하고 어디로 갈지를 내면에서 떠올리기 때문에 나의 음악적인 언어는 한국적인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상’이라는 이름은 작곡가 윤이상에 대한 오마주에서 비롯된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두고 윤이상을 존경해 지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내 남동생 이름은 ‘다니엘 상준 엔더스’이고, 나는 ‘이상 다비트 엔더스’이다. 한국에 대한 정체성을 잊지 말라는 의도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알고 있는 한국식 이름의 범위가 꽤 한정적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상’이라는 이름은 어느 나라에서든지 발음하거나 쓰기 편하고, 기억하기도 쉽다. 영어로는 노래한다는 의미여서 마음에 들고, 한자로도 좋은 의미를 갖고 있다.
음악으로 정체성을 일찍 발견할 수는 있어도, 정립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에서 일을 시작할 때 나는 스무 살이었고, 너무 어렸다. 그 시절, 직업을 갖고 일하는 것과 내가 왜 음악을 원하는지, 두 가지에 관해 생각했다. 당시 난 독립해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돈을 벌었지만 정작 어디에 써야 할지 몰랐다. 또 나에게 벌어지는 모든 것들에 대해 의심하곤 했다.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도 많고 에너지도 있었지만, 고독한 시간이었다. 더불어 주빈 메타ㆍ크리스토프 에셴바흐ㆍ정명훈처럼 나이와 경험이 많은 지휘자들과 함께 하면서 음악을 만드는 것에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인생에서 음악이 필수적인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 그것이 곧 나의 존재성과 연결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단순히 돈을 벌려고 했다면 다른 어떤 직업이라도 가졌을 것이다. 나는 지금 내 일을 제대로 하고 싶었고, 성장하고 싶었기 때문에 고통의 과정을 겪어내기로 했다. 이런 생각들은 스물두 살 무렵까지 했다.
음악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적은 없었나.
어릴 적 나는 문제가 많은 아이였다. 열일곱 살 때만 해도 연주를 정말 못했고, 매일매일이 최악이었다. 매일 불평에, 연주도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때 선생님이 음악이 무엇이고, 음악을 왜 해야 하는지 알려줬다. 그때 새로운 문이 열렸다. 누구나 살면서 어두운 터널을 걸어간다. 하지만 터널 반대편 끝에는 분명 빛이 있다. 사람들은 그 빛을 희망이라고 부른다. 난 희망을 봤기에 그 한 줄기 빛을 따라 평생 걸어갈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그 끝에 다다르지 못할지라도, 또 평생 닿지 못할 테지만 말이다. 음악은 내 인생에서 무엇보다 거대한 존재다. 나는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오직 음악 그 자체를 위해 살고 있다. 음악은 인간이 그저 즐기기 위해 발명한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존재로서 인간과 함께 있어왔다. 우리가 살기 위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음악도 그런 존재다.
미하엘 잔데를링ㆍ린 해럴을 사사했다. 그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받았나.
모두 음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준 사람들이다. 잔데를링은 열두 살 때 처음 만났고 6년간 함께했다. 그는 지금도 첼로를 가르치지만, 연주 활동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지금 유명한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린 해럴은 노래가 음악 철학의 토대인 사람이다. 해럴은 오페라ㆍ교향곡ㆍ가곡 등을 통해 악기로 노래하는 것에 대해 가르쳐 줬다. 하루에 4시간씩 몬테베르디ㆍ제수알도 같은 16~17세기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듣고, 악보를 보며 공부했다. 한동안 이런 방식으로 공부하다 보니 곡의 첫 2초만 들어도 누구의 곡인지 알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평소 연주를 할 때 음악적 표현과 테크닉 중 어느 쪽에 더 신경을 쓰나.
어느 수준까지는 테크닉에 신경 쓴다. 마스터클래스에서 만나는 학생들에게 “테크닉은 음악적인 표현을 도와주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말하려 할 때, 어떤 테크닉으로 표현할지 생각한다. 테크닉 없이 음악적인 표현은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음악적인 표현에만 집중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죽어간다는 것을 떠올리며 이야기하는 것은 테크닉이 아닌 표현이니까.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테크닉을 보여주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그래서 항상 연습이 중요하다.


▲ ⓒ Patrick Bohnhardt

오직 음악, 그 본질을 위해 오늘도 산다
2008년, 스무 살의 나이에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첼로 수석 자리에 올랐다. 오케스트라 활동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쾰른에서 새롭게 공부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때 린 해럴 선생님이 음악을 제대로 배울 생각이라면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보라고 얘기했다. 오케스트라에서 큰 오페라 작품들을 연주하는 게 재밌는 경험이 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같은 작품도 집에서 혼자 연주하는 것과 백 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연주하는 것은 다르니까. 그때 두 시간 동안 오디션을 봤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합격했다. 모든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나를 특별하게 바라봤다. 그 일은 스무 살인 나에게도 엄청난 사건이었다. 하지만 오디션은 간단한 하나의 과정이었고, 그 이후 7개월간의 트라이얼 기간이 있었다. 그때가 정말 힘들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다루는 작품의 60~70퍼센트는 오페라ㆍ발레이고 30퍼센트는 콘서트다. 오페라는 리허설이 따로 없고, 매일매일 다른 30~40개의 레퍼토리가 올라간다. ‘그래, 연주하자’는 생각뿐이었고, 그 모든 과정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매 공연을 위해 정말 열심히 연습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름 앞에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최연소 첼로 수석’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게 됐다. 그리고 4년 뒤인 올해 초,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첼로 수석은 10년 이상 공석이였지만, 나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나 성공을 위해 그 자리에 선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면에서 ‘최연소’라는 단어는 결코 쉽지 않은 수식어다. 예를 들어 장한나는 열세 살에 런던 심포니와 함께 데뷔 반을 내면서 ‘최연소’라는 수식어가 붙게 됐다. 그녀의 실력이 뛰어난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이 스스로에게 항상 좋게 작용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나이가 적었지만, 나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지휘자뿐이었다. 매 시간 다른 사람들보다 4배의 급여를 받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그들의 절반가량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어떤 경력도 없이 오케스트라 단원이 된 것에 대해 보이지 않는 일종의 질투와 경쟁이 있었다. 최연소라는 수식어와 직책에 따른 대우가 흥미진진했지만 한편으로는 거기에서 비롯되는 부담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수석으로서 연주에 대해 결정하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있었고, 그 대상이 전부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최연소라고 하면 대단하게 생각하지만, 유럽에서는 경력이 더 중요하니까. 오케스트라에서 짧은 시간 내에 성숙해질 수 있었고, 인성을 키우는 데 매우 유익한 경험이었다.
오케스트라를 떠나며 아쉬운 점은 없었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세상에는 촉망받는 연주자들이 많다. 그들이 오케스트라 단원이든 실내악 연주자든 솔로이스트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어느 자리에 있느냐가 아니다. 정말로 음악을 즐기면서 하고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세계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오케스트라이자 내 인생에 중요한 가르침을 준 곳이다. 하지만 지금도 내 인생은 진행 중이고, 여러 가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공연이든, 녹음이든, 마스터클래스든 나는 지금 자유롭고, 스트레스 없이 새로운 삶을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10월부터는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다.
지휘에는 관심이 있나.
매우! 지금 지휘를 배우고 있다. 음악에 대한 흥미를 첼로와는 다른 방법으로 느끼는 중이다. 더불어 7대의 첼로와 일렉트로닉 음악에 관한 작곡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중이다.
좋아하는 작곡가와 레퍼토리는 무엇인가.
모든 작곡가와 레퍼토리를 좋아한다. 바흐ㆍ몬테베르디ㆍ제수알도 등 바로크 시대 첼로 작품을 항상 공부한다. 브람스ㆍ슈만 등 낭만주의 음악도 좋아하지만, 좀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크 음악이다. 물론 현대음악에도 관심이 많고, 연주도 자주 한다.
음악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난 음악에 미쳤다고 말할 만한 가족 사이에서 태어나, 늘 음악과 함께 살았고 음악가가 됐다. 나와 비슷하더라도 모든 삶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일 년 뒤에 태어난 남동생은 음악 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그 아이는 지금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하고 있다. 세상에는 누구나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 재능을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나는 건축이나 철학, 사회과학 등도 좋아했지만 결국 음악을 택했다. 더불어 나에게 있어 음악이 직업적인 것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오직 음악의 본질 그 자체를 위해서만 음악을 하고 싶다.
음악 안에서 세운 목표가 있다면.
음악을 사고적 측면에서 발전시키고 싶다. 지금 세상에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 해에 백 회가 넘는 콘서트를 갖는 유명한, 소위 성공한 연주자들이 있다. 하지만 음악을 더 좋게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음악적인 해석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또 기돈 크레머ㆍ주빈 메타 같은 사람들은 오늘날 음악에 관한 사고의 방식을 바꿨고, 거기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우리시대에 남긴 유산은 그 외에도 많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누가 음악의 거대한 변화를 책임지고 있는지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누구든 내 음악을 듣고, 내가 죽은 뒤에 “그는 정말 우리를 감동시켰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앞으로 더 많은 학생들을 만날 텐데, 그들에게 꼭 가르쳐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내가 학생이었을 때의 교육 시스템은 연습 중심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레슨을 위해 매일매일 연습만 했다. 그에 비해 작품에 관한 역사적인 배경지식을 공부하는 것은 정말 부족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디션에 합격하기 위해 연습하지만, 합격하고 나면 그전까지 배운 걸 모두 잊어버리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에서 실망한다. 결국 열심히 연습하지만 무엇을 위해, 왜 하는지 모르는 채 그저 순회할 뿐이다. 나는 단순히 첼로의 기술만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언어ㆍ역사ㆍ지역ㆍ사회적인 이슈 등 세상의 모든 관계들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 음악에 이르기까지, 악기 외에도 알고 이해할 것들이 많다. 큰 그림을 알고서 그 일부를 봐야 한다. 그래야 현재에 닥친 관문을 쉽게 넘길 수 있고, 그것이 인생에 일어나는 엄청나게 많은 일들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개인의 인생뿐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고 다양한 것들을 배우길 바란다. 그것이 진정한 교육이라 생각한다.

글 김선영 기자(sy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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