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ra Jumi Kang & Gautier CapuCon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5월 1일 12:00 오전

“시민들은 사실 뭐 하는지도 잘 모르고, 관심도 덜한 것 같고 자기들만의 축제 같습니다.”
지난 3월 26일 밤, 통영국제음악제 5일째 공연이 끝나고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미륵도의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택시기사가 퉁명스럽게 전해준 축제에 대한 생각은 불만으로 가득 차 보였다.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지만 예전처럼 시내 곳곳에 나붙은 갖가지 현수막과 배너, 광고판은 이제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았다. 이것은 알고 보니 통영시에서 3년 전부터 관련 법규에 맞지 않는다며 길거리 홍보에 제한을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제 출범 11년에 접어든 대한민국 대표 음악축제에 굳이 길거리 홍보에만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외지에서 온 청중과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객석을 채울 수 있을 만큼 축제가 자리를 잡았다고 주최 측은 믿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한 지역 신문에서 평균 92퍼센트의 객석 점유율을 달성했다고 보도한 것과 실제로 필자가 지켜본 공연과는 많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축제를 상징하는 레지던스 아티스트인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의 연주로 관심을 모았던 공연은 1층 객석도 다 채우지 못하고 빈자리가 허다했다. 소위 ‘높으신 분들’이 앉는 1층 노른자위 객석은 아예 텅 비어 있었다.
예술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은 러시아에서 제2의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막강한 권력을 자랑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대표하는 겨울 음악축제인 ‘예술광장 페스티벌’에서 주요 공연이 열리는 날이면 보름 동안 거의 빠지지 않고 시야도 좋지 않은 가장자리 발코니 석에서 저녁 공연을 관람하던 블라디미르 야콥블레프 전 시장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가장 좋은 좌석을 팔지도 못하고 그냥 비워놓아야 하는 우리 현실이 아쉬웠다. 더구나 클라라 주미 강과 고티에 카퓌송의 유일한 듀오 연주회라 허전함이 더했다. 축제 개막작 ‘세멜레 워크’는 티켓 구하기가 극히 어려울 만큼 성황이었다. ‘자유와 고독’이라는 올해 페스티벌의 주제처럼 개막 공연에서는 흥행에서 자유로웠을지 모르나 그 이후 공연에서는 고독한 느낌,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보였다.

젊은 거장의 무대에서 타오른 자유와 고독
3월 26일 저녁, 클라라 주미 강·고티에 카퓌송의 레지던스 아티스트 음악회가 통영시민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렸다. 먼저 무대 위로 나선 클라라 주미 강이 만들어내는 드뷔시의 소나타는 완벽했다. 높은 D음에서 타고 내려와 아래에서 꿈틀대는 저음은 ‘돌체 에스프레시보’의 악상을 올곧게 다듬고 있었다. 스페인적인 느낌의 두 번째 주제는 금세 타오르는 열정을 가득 담았다가 또다시 나락으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간간히 비치는 최고음은 아찔한 현기증마저 느끼게 할 가공할 테크닉을 거침없이 보여주었다. 2악장은 리듬감으로 충만했다. 하지만 칸타빌레 부분을 노래하는 주미 강의 심성은 역시나 스물여섯 살 곱디고운 처녀의 감성을 그대로 느끼게 했다. 3악장의 화려한 스케일 처리는 압권이었고 다채롭게 변화하는 음의 팔레트를 활짝 열어젖혔다.
라벨의 ‘치간’은 도발적이었다. 청중의 박수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바이올린을 거의 수평으로 쥐고 여전사와도 같이 강력한 음의 파편들을 객석으로 쏟아 부었다. 연약한 여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기는 마치 하이페츠와 같은 기계적인 카리스마를 풍기며 무대를 압도했다. 집시의 거친 야성미는 기본이요, 피아노의 트레몰로에 얹혀 흐르는 주제의 관능미는 일품이었다. 그녀에게서 더블 스토핑의 난해한 숲은 간단히 해결되었으며 왼손·오른손 가릴 것 없이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자로 잰 듯한 피치카토는 가히 명불허전이었다.
주미 강이 헤집어놓은 음악의 충격은 후반부 카퓌송에 의해 진정되었다.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번을 준비한 카퓌송은 브람스의 기본이라 할 만한 적적한 아우라에 프랑스적인 에스프리를 점점이 흩어놓았다. 1악장 도입부의 부드럽기 그지없는 레가토는 대단한 격조를 드러냈다. 피아노와 첼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끌어가는 대위법은 엄격했으되 옥죄지는 않았다. 그만큼 음악 자체를 즐기는 여유가 있었던 것. 2악장의 절절한 슬픔은 젊은 연주자의 방식으로 옷을 갈아입고 ‘21세기 식’ 어두움으로 변했다. 3악장의 푸가 또한 과하지 않고 정직하게 각 성부를 노래했다. 값싼 비브라토로 청중을 선동하려고 하는 대신 카퓌송의 잘 다듬어진 비브라토는 활 끝에서 미세한 떨림으로 타올랐다.
코다이의 바이올린과 첼로 듀오는 연주자 간의 호흡이 절묘했다. ‘헝가리 랩소디’를 충실히 구현하는 1악장의 춤판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비탄에 가득한 다음 악장은 논 비브라토의 승리였다. 특히 첼로가 저음에서 격렬히 요동할 때 바이올린이 극히 절제하며 약음으로 울고 있는 모습은 처연하기까지 했다. 피날레에서 주미 강과 카퓌송이 온몸으로 보여주는 다이내믹의 변화는 절묘했다. 그 연장선에서 헨델-할보르센의 ‘파사칼리아’를 앙코르로 선사한 두 젊은 거장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었다.
공연 후 남망산을 내려오며 10년 전 주관 방송사가 매일 생방송으로 전국에 중계하던 야외 스튜디오가 눈에 들어왔다. 통영항을 빙 돌아가며 나부끼던 깃발, 깃발들! 윤이상이라는 확실한 인물이 있었기에 더 빛이 났었다. 윤이상이 작곡한 교가 부르기 대회가 통영 각지의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의 우렁찬 목소리로 울려 퍼졌고, 문화마당과 페스티벌 하우스에서는 축제 기간 내내 사람들로 북적였다. 통영의 뜻 있는 사업가들은 티켓을 여러 장 구입해 학생들을 공연에 초청하기도 했다. 윤이상은 언제나 메인 프로그램을 장식했다.
하지만 올해 축제는 윤이상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세멜레 워크’라는 대작 하나에 집중되는 듯했다. 지난해 효과를 보았던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도 슬며시 자취를 감추었다. 경남MBC는 대표이사의 인사말에서 인용했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예를 말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실제 방송에서 보여주어야 했다. 오스트리아 국영방송으로 웬만한 공연은 생중계되는 잘츠부르크만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전국에 통영국제음악제를 홍보하고 주요 공연을 방송할 수 있는 시스템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잘츠부르크를 배부르게 하는 외국인 관객은 고사하고 먼저 우리 청중이 통영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획기적인 홍보마케팅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올해 6월 드디어 통영국제음악당이 개관한다. 기존 통영시민문화회관·윤이상기념공원도 살리면서 한 단계 도약하는 내년 축제를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10년 전 통영을 방문한 독일 유력 일간지 베를린 모르겐포스트 지의 기자가 필자에게 들려준 말을 다시 한 번 적는다. “통영의 미래는 윤이상과 이 음악제에 달려 있습니다.”

글 유혁준(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통영국제음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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